CPSpeed Entertainment
53 게으름을 벗어던진 소년 (The Boy Who Cast Off Laziness) 본문
2014년 4월, 고등학교 3학년 김재민에게 ‘공부’란 그저 습관처럼 해야 하는 행위, 본능적인 부담감과 의무감의 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독서실 자리에 앉아 무거운 전공서적을 펴지만, 실제 눈이 향하는 곳은 책상 밑에 숨긴 스마트폰의 무한 스크롤이거나 창밖으로 보이는 흐릿한 하늘뿐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험 대신, 어젯밤 새벽까지 본 애니메이션의 최종화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할 축구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재민이의 자리 위에는 수많은 문제집과 인강 교재들이 성의 없이 쌓여 있었고, 그 두께만큼이나 자신의 양심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희미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오늘 하루의 짧은 쾌락을 맞바꾸는 게으름의 전문가였습니다. 특히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기 위해 10분을 투자하는 대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멍하니 20분을 보내는 것이 그에게는 훨씬 익숙하고 편안한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책상에 억지로 앉혀놓는 시간은 길었지만, 실제로 뇌가 가동되는 순공부 시간은 하루 세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고, 재민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합리화라는 달콤한 마취제에 취해 계속해서 이 비루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학생들의 치열한 펜 소리는 재민에게는 그저 존재를 괴롭히는 시끄러운 배경 소음일 뿐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나태함이 불러올 참담한 결과의 무게를 아직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은 재민에게는 일종의 도박판이었습니다. 평소 공부하지 않은 만큼, 그는 벼락치기에 의존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불법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5월, 중간고사 영어 영역 시간이었습니다. 재민은 이번 시험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작게 접어 손바닥에 꼭 쥐고 있던 영어 단어 목록이 담긴 쪽지를 힐끗거리며 커닝을 시도했습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이 종이를 축축하게 만들었고, 그의 심장은 멈출 듯이 격렬하게 뛰었으며, 머릿속으로는 '이것만 성공하면 돼'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마침 복도를 순회하던 담당 교사 박 선생님이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민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재민이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 눈으로만 쪽지에 적힌 마지막 단어의 철자를 훔쳐보는 그 순간, 박 선생님의 그림자가 그의 책상 위를 완전히 덮쳤습니다. 찰나의 정적 후,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책상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습니다. 엄청난 충격음이 조용한 교실을 뒤흔들었고, 재민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선생님은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쪽지를 조용히 낚아챘고, 얼굴에는 배신감과 실망감, 그리고 일말의 분노가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재민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극심한 수치심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커닝하다 걸리는 순간의 그 날카로운 소리와 시선은, 재민에게 고3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길고 끔찍했던 순간으로 영원히 각인되었습니다.
시험 성적표가 나오던 날, 재민은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PC 앞에 앉아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등급은 주요 과목 모두에서 5등급과 6등급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담임인 박 선생님은 재민을 조용한 상담실로 불렀고, 이내 재민에게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꾸중을 쏟아냈습니다. 선생님은 "재민아, 나는 네가 게을러서 실망한 것이 아니다. 너는 충분히 똑똑한데, 왜 너 스스로의 가능성을 이렇게 짓밟고 있니? 이제 곧 닥칠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꾸중은 예상보다 훨씬 차분하고 깊었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재민의 나태함에 대한 깊은 아픔과 애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던진 "나중에 후회할 네 모습이 가장 안쓰럽다"라는 말은 재민의 심장을 후벼 팠습니다. 재민은 그날 밤, 독서실 책상 앞에서 지난 18년간 자신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왔는지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그는 쪽지를 훔쳐보다 걸린 치욕스러운 기억과 형편없는 성적(영어 5등급, 수학 6등급)을 매일 되새기며, 스스로를 '짐승'처럼 몰아붙였습니다. 재민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잡념과 게으름의 씨앗을 뿌리 뽑기로 결심했고, 그때부터 공부는 '죽어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면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물처럼 마시며, 단 하나의 잡생각도 용납하지 않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재민의 노트는 더 이상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고, 지우개 가루와 펜 자국으로 얼룩지기 시작했으며, 그의 눈빛은 마침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날카롭고 강렬한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앞만 보고 달린 재민은, 스스로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허락했습니다. 7월 말,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였고, 재민의 성적은 눈에 띄게 올랐지만, 몸과 정신은 거의 극한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동해안의 한 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해변에 도착한 재민은, 푸른 파도 소리와 짠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그동안 억눌렸던 해방감을 만끽했습니다. 그는 뜨거운 모래밭 위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고, 저녁에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친구들과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공부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일째 되던 날 밤, 파도 소리가 귀를 때릴 때, 문득 재민은 텅 빈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난 3개월과 앞으로 남은 3개월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 좋지만, 결국 나는 이 일주일 때문에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들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의 해방감을 잠식해 들어왔습니다. 재민은 자신이 이제는 게으름을 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보낸 일주일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굳건한 성장의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확인하는 재정비의 순간이었습니다. 일주일 후,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재민은 피로했지만 충만한 얼굴로 문제집을 펼쳤고, 그의 손에는 다시 한번 펜이 굳게 쥐어졌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자, 학교 분위기는 이전 학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수시 접수와 마지막 모의고사가 연이어 다가오면서, 교실은 마치 숨 막히는 시험장처럼 변모했습니다. 재민은 이 냉정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집중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1학기의 게으른 자신을 완전히 잊고, 스스로 설정한 극한의 학습 루틴을 수행하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전날 부족했던 개념을 복습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오답노트를 정리하며 자신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특히 재민은 시간을 쪼개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쉬는 시간 10분은 반드시 국어 비문학 지문 하나를 독해하는 시간으로, 점심시간은 수학 문제 풀이 시간을 확보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의 공부는 이제 단순히 양을 채우는 것을 넘어, 효율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9월 모의고사에서 재민은 눈에 띄게 향상된 성적(주요 과목 평균 3등급 진입)을 받아들었고, 이는 그에게 엄청난 자신감과 함께, ‘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강렬한 동기 부여를 제공했습니다. 그의 손톱은 문제집을 꽉 잡고 있던 습관 때문에 항상 짧게 깎여 있었고, 피로 누적으로 인해 눈 밑은 검게 그늘졌지만, 재민의 내면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과 성숙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정직하고 끈기 있게 전진하는 진정한 고3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11월 13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재민은 평소처럼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자동으로 눈을 떴습니다. 밖은 아직 새벽의 찬 공기가 가득했지만, 재민의 마음은 의외로 고요하고 평온했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들고, 재민은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 사이를 걸었습니다. 시험장에 도착한 재민은, 복도에서 대기하며 주변 학생들의 떨리는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관찰했지만, 자신에게는 묘한 초연함만이 감돌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닌, 지난 일 년간 자신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평정심이었습니다. 재민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수험표와 컴퓨터용 사인펜을 확인했습니다. 8시 40분, 예비령이 울리고 감독관이 입실하여 주의사항을 전달했습니다. 8시 50분, 본령이 울리자 재민은 국어 영역 시험지를 받아 들었고, 잠시 펜을 쥔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는 짧게 심호흡하며 지난 1년의 모든 순간들—커닝으로 인한 수치심, 선생님의 꾸중, 해변에서의 반성, 그리고 피와 땀으로 얼룩진 수많은 밤들을—떠올렸습니다. 재민은 이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수능은 그저 한 해 동안의 성장을 확인하는 마지막 관문일 뿐이었습니다. '시작.' 재민은 굳게 결심하며 문제지의 첫 번째 지문에 펜을 내리찍었습니다. 창밖으로 비치는 겨울 햇살 아래, 그의 책상 위에는 더 이상 게으름뱅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청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53편 끝!
'단편식 자작 소설 > 정규 자작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4 스토얀 (Stoyan) (0) | 2026.03.07 |
|---|---|
| 52 여섯 누나 (Six Sisters) (1) | 2026.02.01 |
| 51 홋카이도의 겨울 (Snowy Bathtime) (0) | 2026.01.14 |
| 50 핏빛 야경 (Bloody Night Street) (1) | 2026.01.01 |
| 49 몽유병에 걸린 남자 (Sleepwalking in the dark) (1) | 2025.12.25 |